발달장애인은 ‘나’로 살아갈 수 있을까
성준, 동현, 순재, 유리, 주훈, 현철
여섯 명의 발달장애인 청년들이 직접 답했다

피플퍼스트서울센터는 22일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하자센터 본관 999클럽에서 발달장애인 청년 6명의 삶과 자립 이야기를 담은 ‘길 위에서, 내가 되다’ 이야기자리를 열었다. 이들은 자신의 삶을 직접 말하며 발달장애인 차별이 여전한 사회에서 ‘나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함께 나눴다.

김성준의 이야기: “끊임없이 어려운 질문들을 마주하지만, 피하지 않으려 합니다. 행복해지고 싶으니까요”

성준(24세)은 4년 전, 20살에 발달장애인이 되었다. 20살이 돼서야 장애 등록을 했다는 뜻이다. 성준은 성준 자신을 아주 싫어하는 아이였다. 자기혐오가 심해 거울 보는 것도 괴로울 정도였다. 앨범을 펼쳤을 때 자신의 얼굴이 보이면 그 자리에서 바로 덮어버렸다. 가족이 아닌 사람과는 말도 잘 나누지 못했다.

성준의 집은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부모님은 늘 일하시느라 바쁘셨고, 가족끼리 크게 싸울 때도 많았다.

“저는 무서웠습니다.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이 집마저 깨져버릴까 봐 무서웠습니다. 부모님 대신에 둘째 형이 저를 많이 돌봐주었습니다. 형에게 의지를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의지하는 만큼 형에게 미안했습니다. 형이 부모님에게 많은 사랑을 못 받는 것이 제 책임인 것만 같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께서는 식당 일을 오래 하시다가 제가 고등학교 무렵부터 아프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때도 저는 엄마가 아픈 게 제 탓인 것 같았습니다. ‘나는 가족에게 짐’이라는 생각이 제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성준은 지적장애를 등록하고, 형을 통해 마포발달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알게 된다. 성준은 처음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고 했다. 그러나 마포센터는 얼마 못 가 지원이 끊겨 문을 닫게 된다.

“절망하고 있던 저에게 운 좋게도 피플퍼스트서울센터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또다시 새로운 사람들에게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부담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제게 다가와 이것저것 물어보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 사이에서 내 자리가 생겼다는 것이 참 행복했습니다. 천국 같았습니다. 제 삶에 드디어 구원이 찾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준이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누군가 먼저 말을 걸어주기만 기다리는 사람’에 머물러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자립이야기’ 자조모임에서 원하는 주거형태를 물어봤을 때 ‘지원주택’은 싫다고 했었습니다. ‘지원’이라는 두 글자가 저에겐 짐으로 들렸기 때문입니다. ‘짐이 되고 싶지 않다’ 그 생각 하나에 빠져 세상 사람들과 거리를 두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정말 달라져야겠다고 느낍니다. 기대고 싶을 때는 기댈 줄 알고, 누군가 힘들면 그 사람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고 싶습니다. 피플퍼스트 활동을 하면서 자립에도 여러 의미가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자립’은 나 자신과 내 삶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는 일이더라고요.

저는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빨리 자립하고 싶습니다. 솔직히 발달장애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끊임없이 어려운 질문들을 마주하지만, 피하지 않으려 합니다. 행복해지고 싶으니까요.”

김동현의 이야기: “새해가 다가와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때, ‘복 받았구나’ 느껴요”

동현(31세)은 동작우체국에서 우편물 분류 업무를 하고 있다. 택배와 우편물이 통째로 담긴 컨테이너를 쭉 깔고, 분류표를 피고 주소대로 분류를 한다. 하루 4시간씩, 아침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일한다.

“힘들긴 한데 보람이 있어요. 우편 분류가 저하고 잘 맞는 것 같아요. 매일 반복되는 일 같지만 저는 똑같은 일처럼 안 느껴져요. 왜냐하면 주소가 다 다르니까요.

월급이 나올 때면 즐거워요. 나 ‘복 받았구나’ 느껴요. 또 살면서 복 받았다고 느낄 때는 맛있는 거 먹을 때랑 생일 선물 받을 때, 또 새해가 다가올 때예요. 나이를 한 살 더 먹으면 ‘내가 1년을 더 살았구나. 나 하고 싶은 게 많은데 그걸 다 해냈네’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따뜻해져요. 사는 게 좋아요.”

2년 동안 피플퍼스트서울센터 ‘자립이야기’ 자조모임에 참여한 동현은 아직 가족으로부터 자립을 하지는 않았다.

“‘언젠가 자립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엄마 아빠가 나를 계속 봐줄 수는 없으니까요. 근데 아직은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최대한 미루고 싶어요. 식사 챙기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것도 걱정이지만, 혼자 살려고 하니까 세상이 무서워요. 여러분들도 저의 자립을 위해서 발달장애인의 인권에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어요.”

권순재의 이야기: “아직은 부모님과 떨어져 살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는…”

순재(31세)는 4개월 전 새로운 직장을 구해 바리스타 일을 하고 있다. 커피를 내리고, 우유 스팀도 하고, 손님에게 음료를 드리고 계산하고, 매장도 정리한다. 올해 여름부터는 발달장애인 여행 자조모임에도 나가고 있다. 직접 계획을 짜 식당도 찾고 돈을 얼마나 쓸지도 함께 고민한다.

“세상에 대해 더 흥미를 느끼고 싶습니다. 사는 게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세상은 우리에게 적응하라고 말하지만, 저는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요.

아직 저는 부모님과 떨어져 살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도 ‘자립이야기’ 자조모임을 하면서 작년부터 혼자 하는 일들을 조금씩 해 보고 있습니다. 혼자 공원에 가거나 동네 산에 다녀오면 마음이 평온하고 좋아요. 혼자 밖에서 자고 오는 여행은 아직 못 해봤어요. 그건 좀 까마득하게 느껴져요. 그래도 언젠가는 커피를 더 배워서 제 가게를 차리고 싶다는 꿈이 있습니다.”

김유리의 이야기: “앞으로는 부모님 말씀을 안 들어보려고 합니다”

유리(38세)는 자신을 “이제 막 심리적 독립을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부모님은 “걸음걸이가 좋은 편이 아니니 치마를 입으면 바지를 입었을 때보다 자주 넘어질 것”이라고 걱정하셨지만, 유리는 한 달 전 처음으로 혼자 옷 가게에 가서 원피스를 샀다. 유리는 주변 언니들의 조언을 듣고 눈썹 문신도 하고 싶다고 했다.

“눈썹 문신을 못하고 있는 이유는 ‘아플까 봐’, ‘겁나서’가 아니라 부모님께서 화를 내실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직 심리적 독립을 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부모님께 말하지 않고서는 눈썹 문신을 해 볼 자신이 없는 게 말이죠.

남동생은 얼마 전 부모님 동의를 안 받고 눈썹 문신을 하고 왔다는데요, 아빠한테도 눈썹 문신을 해 보라고 조언해 주었어요. 아빠는 ‘그럴까’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뭐가 그리 무서웠던 걸까요?

지금부터 하나둘 부모님으로부터 심리적 독립을 하고 나면 부모님 없이 혼자 살아갈 날이 두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떤 유튜브 영상이 제 눈에 띄었습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심리적 독립을 하려면 ‘부모님을 실망시켜 드려야 한다’는 내용의 영상이었습니다. 부모님의 의견을 참고용으로만 들어야 독립이 가능하다고 하네요.

지난 38년 동안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왔다면, 앞으로는 죄송하지만 부모님 말씀을 안 들어보려고 합니다. 부모님도 이러한 저를 이해해 주시는 날이 오겠죠.”

오주훈의 이야기: “지원주택에 있는 것이 좋아요”

주훈(30세)은 자립한 지 3년 된 발달장애인이다. 2022년 코로나 시기가 끝난 뒤, 원룸에서 자립을 시작했다. 그의 자립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원룸의 문을 스스로 열기까지 3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어렵게 집에 들어간 뒤에도 쉽지 않은 일투성이였다.

“옆집 아줌마가 자꾸 참견하고, 주변에 사는 아저씨가 시끄럽다고 무섭게 화를 냈어요. 자고 있는데 우리 집 문을 때리기도 했어요.”

어려움을 겪고 있던 주훈에게 피플퍼스트서울센터는 장애인지원주택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다. 처음에는 그곳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했지만, 직접 지원주택을 방문해 보고, 기존에 살던 원룸에서도 더 지내보고, 가족이 있는 집도 오가면서 고민한 끝에 스스로 지원주택에서 살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지원주택에서 생활한 지도 어느덧 1년 반이 지났다.

주훈의 집에는 ‘미니슈퍼방’이 있다. 마트나 편의점에서 사 온 과자와 음료 등을 진열해 놓은 곳이다. 실제 슈퍼처럼 주훈이 직접 물건을 골라 구입하는 방식으로 이용한다. 이 공간은 주훈이 스스로 꾸며 만든 주훈만의 공간이다.

“지원주택에 있는 것 좋아요. 저는 세탁기를 좋아해요. 집에서 세탁기가 돌아가고 있는 걸 보면 마음이 편안해요.”

박현철의 이야기: “재가 발달장애인이 자립할 때 받는 서비스가 너무 부족해요”

현철(38세)은 자립한 지 4년 된 발달장애인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모은 돈으로 보증금을 내고 가전제품을 사고 피플퍼스트서울센터의 지원을 받아 자립을 시작했다. 1년 동안은 주거 지원 코치의 지원을 받았지만, 지금은 오롯이 혼자 살고 있다.

“자립생활에서도 현실적인 어려움이 컸어요. 세면대나 형광등이 고장이 나면 부모님께 요청하곤 했어요. 아버지가 기술자라서 쉽게 해결해 주셨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면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재가 발달장애인이 자립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사회적 서비스가 너무 부족합니다. 계속 부모님께 연락드리는 것도 힘들고 공공임대주택에 가고 싶지만, 이것도 잘 알아보고 이사해야 하니 고민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자기결정권을 지키면서 받을 수 있는 좋은 지원이 무엇인지 동료들과 함께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립’이란 무엇일까. 이날 이야기자리에 참석한 이들은 이렇게 답했다.

“행복하다. 자유가 생겼다.”
“내가 나답게 살아가는 것”
“혼자여도, 함께여도 불안하지 않은 삶”
“투쟁의 산물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자립’은 ‘남에게 예속되거나 의지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섬’을 뜻한다. 그러나 정작 자립해 살아가는, 혹은 자립을 꿈꾸는 발달장애인들은 자립을 그렇게만 바라보지 않는다.

그들에게 ‘자립’이란 남에게 의지할 때와, 혼자 서야 할 때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이다. 아직 (물리적으로) 자립하지 않은 성준·동현·순재·유리도, 자립한 주훈·현철도, 오늘도 여전히 ‘자립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