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절반 좌석 밖으로 빠졌지만 운행 계속…응급조치·119 신고도 없어 사고 지켜본 어머니에게 경위 묻지 않은 채 보험금 지급 거절 피해 가족, 놀이공원·보험사·손해사정업자 상대 손해배상청구 소송 장추련 “장애가 안전 책임 회피하는 면죄부 돼선 안 돼”
경기도 파주의 한 놀이공원에서 장애아동이 안전장치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놀이기구를 타다 추락해 크게 다쳤다. 그러나 놀이공원과 보험사는 사고 원인이 아동의 장애에 있다며 책임을 부인했다. 피해 아동의 가족은 놀이공원과 보험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 등은 10일 오전 11시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고의 원인을 장애에서 찾는 것은 명백한 장애인차별”이라며 놀이공원과 보험사에 책임 인정과 정당한 배상을 촉구했다.
10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자폐성 장애아동 놀이기구 추락 사고 손해배상청구 소송 제기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사고 시 무조건 장애를 탓하는 것은 차별입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 사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몸 절반이 좌석 밖으로 빠졌지만 운행 계속
사고는 2024년 10월 13일,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는 만 7세 아동이 ‘파도그네’를 이용하던 중 발생했다. 파도그네는 중앙 기둥에 연결된 여러 개의 1인용 좌석이 공중에 매달린 채 원을 그리며 회전하는 놀이기구다.
보호자는 탑승 전 담당 직원에게 아동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운행을 멈춰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아동의 몸이 좌석 밖으로 절반가량 빠져나온 뒤에도 놀이기구는 멈추지 않았고, 결국 아동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아동은 안면부 등에 중상을 입어 두 차례 수술을 받았고, 퇴원한 뒤에도 반복적인 경기 증상을 보이고 있다. 안구 부위는 지속적인 경과 관찰이 필요한 상태다.
기자회견에서 아동의 어머니는 최현정 인권법행동 함께, 정의 변호사가 대독한 발언문을 통해 사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어머니는 “기구가 가장 높이 올라가 세 바퀴쯤 돌았을 때 아이의 몸은 앞으로 푹 숙여진 채 절반이나 의자 밖으로 나와 있었다”며 “이를 보고 멈춰 달라고 소리쳤지만 직원은 반대쪽을 보고 있었고, 그다음 바퀴에서 아이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사고 직후에도 놀이공원 측은 응급조치를 하거나 119에 신고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이의 얼굴뼈가 다 깨져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지만 직원들은 쳐다만 볼 뿐이었다”며 “신고한 것도 나였고, 아이를 안고 구급차가 있는 곳까지 뛴 것도 아빠였다. 그 시간 내내 아무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고가 난 뒤 놀이공원 측은 피해 아동의 부모에게 모든 보상을 해줄 테니 치료에 전념하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소송대리인단에 따르면, 보험사가 아동의 장애를 사고 원인으로 지목하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자 놀이공원 측도 배상 약속을 뒤집고 책임을 부인했다.
소송대리인단에 따르면 보험사는 시설상 하자가 없고 탑승 안내도 했다며,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는 아이가 놀이기구가 회전하는 중 돌발행동을 해 사고가 났으므로 보상책임이 없다고 결정했다. 사고가 아동의 장애로 인한 ‘본인 과실’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보험사의 의뢰를 받은 손해사정인은 유일한 목격자인 어머니에게 사고 경위도 묻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사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사람은 나인데, 아무도 내가 무엇을 봤는지 묻지 않았다”며 “사고 순간을 본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아이가 돌발행동을 했다고 단정할 수 있나”라고 말했다.
소송대리인단은 아동이 이전에도 여러 놀이기구를 이용했고, 사고가 난 기구와 같은 형태의 놀이기구도 문제없이 탄 경험이 있었지만 이 역시 고려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소송대리인단에 참여한 조인영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아동의 구체적인 경험과 특성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지워졌고, 오직 자폐스펙트럼장애라는 진단명만 전면에 내세워졌다”며 “그 진단명 하나로 아동의 모든 행동이 규정됐지만, 이러한 판단에는 어떠한 법적·객관적 근거도 없었다”고 말했다.
안전장치도 구호조치도 없었지만…책임은 장애아동에게
소송대리인단에 따르면 사고가 난 놀이기구는 성인과 아동이 모두 이용하도록 설계돼 좌석이 성인 기준으로 넓었지만, 안전장치는 허리 높이의 체인뿐이었다. 탑승자의 상체를 잡아주는 어깨 구속장치도 없었다. 이 때문에 체구가 작은 아동이 혼자 탑승하면 회전 과정에서 몸이 좌석 밖으로 밀려날 위험이 있었다.
「관광진흥법 시행규칙」 별표 13은 지면에서 1미터 이상 올라가는 밀폐되지 않은 승용물에는 추락방지장치를, 반동이 발생하는 시설에는 충격흡수재를 설치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해당 놀이기구에는 이러한 안전장치가 갖춰져 있지 않았다는 것이 소송대리인단의 설명이다.
조 변호사는 “이는 기구 자체의 문제이자 이용자의 추락을 막을 구속장치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놀이공원의 문제”라며 “안전설비를 갖추지도, 사고 뒤 구호조치를 취하지도 않았으면서 사고의 모든 책임을 아동과 아동의 장애에 돌렸다”고 비판했다.
피해 아동과 가족은 놀이공원과 보험회사, 보험회사의 의뢰를 받아 손해사정서를 작성한 손해사정업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대리인단은 아동의 구체적인 특성과 목격자의 진술을 조사하지 않은 채 장애를 근거로 사고 원인을 단정한 것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차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박김영희 장추련 대표는 “안전을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책임을 다하지 않은 일을 장애 탓으로 돌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장애가 안전조치를 하지 않은 놀이공원과 책임을 방기한 보험회사에 면죄부를 주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지 법정에서 명확하게 증명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